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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걷는 이 길이 과연 내게 잘 맞는 길일까?’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커리어 고민을 겪습니다. 누군가가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의문과 갈증을 조용히 덮어둘 때, 또 다른 누군가는 과감히 방향키를 꺾어 완전히 새로운 길을 탐험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커리어를 주체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거죠.

 

거침없이 ‘변화’를 택한 이들을 우리는 이제부터 커리어체인저(Career Changer)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낯선 업무 환경,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않았던 직무…용감한 도전에 나선 커리어체인저들의 이야기 속에서 여러분도 새로운 가능성의 씨앗을 발견하기를!


살면서 내가 도전해 보고 싶은 일을 만나는 사람은 세상에 얼마나 될까요? 거기에 앞뒤 재지 않고 뛰어들어보는 용기를 가진 이는 또 얼마나 될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컴퍼니타임스>가 만난 YBM어학원 신촌점의 교수부장 임현주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도전’이라는 게 마냥 쉽지만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거든요.

 

커리어체인저 임현주님은 모두가 부러워할 대기업에서의 평탄한 커리어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에게 더 잘 맞는 옷을 찾아 영어 강사의 세계에 뛰어들었습니다. 2년 반 동안 휴일 없이 일에 매진하면서 직무 전환에 도전한 건데요. 프리랜서 강사로서의 시간을 거쳐,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온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순간에 후회는 없었다는 그의 커리어 여정 스토리를 차근차근 들어봤습니다.

 

 


대기업 취뽀 성공!
그런데 이게…맞아?

 

지금의 직업을 찾기 전, 첫 직장은 대기업이었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사회생활을 시작하셨나요?

 

대학 3~4학년 무렵, 남들 한다는 취업준비는 다 했어요. 여러 기업에 이력서를 넣던 중, 모 통신사에 인턴으로 지원했습니다. 채용연계형 인턴으로만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기업이어서, 인턴 과정을 잘 거치면 정규직 입사도 가능하리란 기대가 있었어요.

 

다행히 좋은 평가를 받아서 신입사원으로 정식 입사했고, 엔지니어 직무로 배치됐어요. 당시 3G에서 4G로 접어들던 시기여서 한창 바빴죠. 제가 소속된 팀은 서울 서대문구·용산구·마포구의 광통신망을 구축하고 관리하는 일을 맡았어요.

 


취준생 시절, 통신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모습을 목표로 삼으셨던 건가요?

 

아뇨. 전자공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통신사에 엔지니어로 취직하겠다고 목표를 세워둔 건 아니었어요. 애초에 채용연계형 인턴으로 뽑힌 것도 전공 지식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언변 덕이 컸어요. 여러 채용 전형 중 프레젠테이션 심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거든요. 전공 학점이 뛰어나지도 않았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제 적성은 다른 데 있었던게 아닌가 싶어요. 

 


입사 후 업무 만족도는 어떠셨는지 궁금하네요.

 

교대 근무가 주는 부담이 컸어요. 통신 장애가 발생하면 해결해야 하는데, 이용자들의 통신 사용량이 활발한 시간에는 작업을 할 수 없거든요. 팀원들이 교대 근무를 하며 야간 작업을 했어요. 전 체력이 좋은 편도 아니었고, 여자가 오래 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팀 분위기가 워낙 조용한 것도 제 성향과는 썩 잘 맞지 않았어요. 공대를 나왔으니 남초집단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긴 했지만, 말할 일이 거의 없는 직무이다보니 좀 답답하더라고요. 팀 내에서 저 혼자 여자이고 막내여서 적극적으로 떠들고 의견을 내기가 조심스럽기도 했고요.

 

‘속 시원하게 실컷 떠드는 일을 하고 싶다!’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직업을 강사로 전환하고 난 뒤부턴 집에서 말 한 마디도 안 하는데 말이죠. (웃음)

 

 


©컴퍼니타임스

 

본격적으로 커리어 전환을 결심하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요?

 

회사에 다닌지 3~4년째로 접어들었을 무렵이었어요. 내년에 대리 직급을 다느냐 마느냐, 하는 시점이었습니다. 마침 그때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했던 토익 학원 선생님께 안부 연락이 왔어요. 취업 준비를 하면서 토익 학원 수강료를 아껴보겠다고 조교 아르바이트를 했었거든요. 그럼 무료로 수업을 들을 수 있었으니까.

 

제게 연락을 주신 그 선생님이 당시 학원에서 매출이 제일 좋은 분이었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하루 몇 시간 정도만 수업하고 월에 몇천만원씩 벌어가는 걸로 보였으니, 너무 부러웠어요. 문득, ‘난 이렇게 힘들게 일하면서 고정 월급 받아가는데, 이런 삶도 있었지!’ 싶더라고요.

 

‘나도 저거나 해볼까?’라는 생각으로 덤벼들었어요. 학원에서 알바하며 귀동냥한 세월이 있으니, 충분히 해볼 만하겠다고 느꼈어요. 학원에서 알바하던 시절에 데스크 상담부터 시작해 단어시험 채점, 간단한 질의응답, 간단한 수업까지 맡아 본 경험이 있어서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죠.

 


학원 강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제일 처음 한 일이 뭐였어요?

 

학원에 강사로 지원해 토익 주말반 수업을 시작했어요.

 


신입 강사에게 덜컥 강의실을 내주진 않을 것 같은데요, 학원에선 어떤 요소를 보고 수업을 열어줄지 말지 결정하나요?

 

학원이 강사를 발탁할 땐 학력, 경력, 강의력 3가지를 봐요. 경험이 없는 초짜 강사를 받아주는 데가 많진 않았지만, 학원에서 꽤 오래 알바로 일하며 그곳의 생리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괜찮게 봐주신 것 같아요. 시범강의에서 보여드렸던 강의력에도 기대를 걸어주셨던 것 같고요.

 


회사에 재직하면서 투잡을 뛰셨다고요. 회사에도 그 사실을 알리셨나요?

 

냅다 ‘저 그만두겠습니다’ 선언했죠. (웃음) 당시 팀장님께서 그만두려는 이유를 물으시기에,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제 얘기를 들으시곤 “고정적으로 월급 받던 사람들은 야생에 나가서 얼마나 힘을 들여야 돈을 벌 수 있는지 감이 없다. 얼마나 척박한 곳인지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그래도 자신 있으면 그때 나가라. 그땐 놓아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회사 사규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배려해줄테니 겸업을 해봐라”라고 권해주셨어요. 덕분에 평일엔 회사생활, 주말엔 강사생활을 하며 투잡을 뛰게 됐어요.

 

 


냉혹한 강사의 세계,
망하면 안 된단 절박함으로

 


소규모 수업을 진행 중인 모습 ©임현주님

 

강사 일을 시작해보니 어떻던가요? 예상했던 것과 어느 정도 일치했는지 궁금해요.

 

이래서 팀장님이 그만두지 말라고 하셨구나, 여실히 느꼈어요. 수업 준비를 위해 들여야 하는 시간도 생각보다 많았고, 비용적 부담도 적지 않았어요.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학원 강사는 개인사업자에 가까운 프리랜서 형태로 일해요. 학원은 수업할 공간을 빌려줄 뿐이고, 교재 준비부터 학생들에게 내 수업을 알리기 위한 프로모션 비용을 강사들이 사비로 진행해야 하거든요. 예를 들어, 학원 앞에 세워둔 입간판이나 포스터, 온라인 홍보 같은 것들이요.

 

초기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가는데, 돈을 들인다고 해서 수강생이 무조건 확보되는 것도 아니에요. 강사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 이런 생태계를 피부로 경험하고, 생각보다 호락호락한 게 아니구나를 깨달았어요.

 


그러고보면 학생들은 대부분 유명한 강의를 들으려고 하지 않나요? 신입 강사의 수업은 어떤 학생들이 듣는지 궁금하네요.

 

사람 성격이 다 다르듯이 학생들도 선호하는 수업이 제각각이에요. 사람 많은 데 가면 두통과 답답함을 호소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그런 분들은 소규모 수업을 들으려고 하는 편이고요. 대형 강의에 들어가면 내 수준에 맞지 않을까봐 걱정하는 분들, 과외를 듣기엔 비용 부담이 되지만 소형 강의에서 과외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하는 분들이 약간 모험을 택하는 거죠.

 


2가지 일을 병행하는 게 체력적으로 힘들진 않았나요?

 

겸업을 했던 2년 반 동안은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 일했어요. 그땐 어렸고, 결혼하기 전이었어서 일 외에 다른 데 신경쓰지 않아도 됐으니까 그닥 지친다는 느낌을 못받았어요. 굳이 쉬어가면서까지 에너지를 충전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거 같아요.

 

창피해지지 말자는 마음도 컸어요. 제가 수업을 나갈 수 있도록 선배들이 교대근무 주말 스케줄에서 저를 항상 빼주셨거든요. 그들에게도 주말이 얼마나 소중해요? 가족과 함께 시간도 보내고 싶고, 다른 취미생활을 할 수도 있는 시간인 거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응원해주신 거예요. 이렇게까지 큰 배려를 받았는데, 절대 망하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었어요.

 


그럼 평일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주말엔 수업을 하셨던 건데, 수업 준비는 언제 하신 거예요?

 

당시엔 회사 일이 본업이고 강사 일은 부업이었으니, 본업에 지장이 가지 않아야 한다는 철칙이 있었어요. 퇴근 후 3시간 내에 수업 준비와 관련된 일을 무조건 마친다는 기준을 정해뒀죠. 그래야 최소한의 수면 시간을 확보하고 다음 날 회사에 가서 쏟을 에너지를 다시 비축할 수 있었으니까요.

 

 


©임현주님

 

통신사를 그만둔 건 언제쯤인가요?

 

BEP(손익분기점)를 넘기는 순간이 오면 퇴사해야겠다고 항상 생각했어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50만원’이 기준이었어요. 내가 본업으로 받는 월급보다 강사로 주말 이틀을 일해 한 달간 버는 돈이 단 50만원이라도 더 많으면 그만둬도 될 것 같았어요. 6개월 연속으로 수익이 기준치를 뛰어넘어 꾸준히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는 걸 보면서 결심했어요. 오케이, 이제 떠나자!

 


회사에는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회식 자리에서 ‘팀장님, 제가 회식비를 계산해도 되겠습니까?’ 했어요. 팀장님이 ‘너 이제 좀 버는구나’ 하시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시건방진 행동이어서 후회스러운데, 당시에는 그렇게 제 나름대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었던 거였어요. 저를 배려해주신 분들께 식사 한 끼 대접하고 싶었거든요. 이불킥 감이죠. (웃음)

 


본업을 바꾸고 난 뒤에는 어떠셨어요? 꾸준히 소득이 잘 유지되었나요.

 

퇴사 후에는 평일 오전 수업, 저녁 수업도 하고 주말 수업도 했어요. 결혼하고 아기 낳기 전까지 계속 강사 일을 했으니 대략 2020년까지, 약 5년간 전업 프리랜서 학원 강사로 일했습니다. 수익은 고정 급여가 아니다보니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지만, 그만두기 직전까지 수입이 최고점을 찍었어요. 일타강사분들이 보면 ‘그것도 많이 버는 거니?’하실 수도 있지만 제 기준에선 꽤 잘 벌었다고 생각해요.

 


직무전환의 중간다리로 겸업 기간을 거친 셈인데요. 직무전환을 꿈꾸는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루트인가요?

 

어떤 직무인지에 따라서 좀 다를 것 같아요. 강사가 만약 고정급여를 받는 일이었다면 저는 겸업 없이 바로 이직했을 거예요. 개인사업자나 프리랜서로 해야 하는 일이라면, 저처럼 겸업을 하면서 일의 현실과 가능성을 경험해보고 기반을 닦는 기간을 반드시 가지시길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다시 직장인의 삶으로!
커리어 여정은 순항 중

 

현재는 YBM어학원 신촌점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하신다고요.

 

아이를 출산한 뒤 빨리 복귀하고 싶어서 YBM에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봤어요. 토익이 아닌 일반 회화 강의를 해보라고 기회를 주셔서 새로운 강의를 시작하게 됐고요. 건대, 종로 지점을 거쳐 신촌으로 와서 계속 강사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근무하고 계시던 교수부장님이 그만두게 되시면서 지금 원장님께서 제안을 주셨어요.

 

프리랜서 강사는 수익이 들쭉날쭉해요. 네 달 벌어서 1년 먹고 산다는 말을 할 정도로요. 그런데 아이가 커가고 고정 지출이 늘어나니, 언제까지 내가 이렇게 일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더라고요. 게다가 영어강사는 직장인 수요를 잡아야 해서, 직장인들 출근 전이나 퇴근 후 시간에 수업을 해야 해요. 아이가 엄마를 가장 필요로 하는 시간대죠.

 

여러가지 근무 여건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던 중 고정적으로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자리를 제안 받으니 저로선 감사할 따름이었어요. 제가 아이를 낳고 복귀했을 때 저를 처음 YBM 강사로 발탁해주신 것도 지금의 원장님이신데, 그때부터 중요한 순간마다 저에게 기회를 주신 덕이 정말 커요. 
 

 

교수부장은 어떤 일을 하는 자리인가요?

 

학원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일하는 YBM 신촌점에선 원어민 강사들의 수업과 그들이 내는 매출을 관리하고, 어떤 강의를 해야할 지 정하고 피드백을 주기도 해요. 원어민 파트를 총괄 관리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어요. 당장 강사를 배정할 수 없지만 반드시 진행해야하는 수업들을 맡기도 하고요. 이것도 업무의 일환이라 수업 페이를 별도로 받는 건 아니에요.

 


프리랜서 강사였다면 수업을 추가로 맡았을 때 그만큼 소득도 늘었을 텐데요, 고정급여를 받는 직장인의 삶으로 돌아온 게 아쉽진 않으신가요?

 

어떤 분들은 개인 사업이나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월급쟁이로 상황이 바뀌었을 때 아쉬워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일한만큼 번다’라는 말이, ‘일하지 않으면 못번다’는 말과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직장인도 계속 일을 해야하긴 하지만, 업무량이 비교적 적은 달에도 정해진 월급이 안정적으로 나온다는게 좋아요. 개인사업자들은 열심히 일해도 수익으로 직결되지 않을 때가 많은데, 그런 순간을 견디지 않아도 되니까요.

 

 

©컴퍼니타임스

 

통신사 엔지니어, 프리랜서 강사, 학원 교수부장. 3가지 커리어를 비교해보자면 언제 소득이 가장 좋았나요? 


소득이 가장 높았을 때도, 가장 낮았을 때도 프리랜서 강사 시절이에요. 코로나 땐 정말 부침이 심해서 소득이 굉장히 낮았거든요. 통신사 엔지니어 시절과 지금을 비교하면, 엔지니어로 일할 때 더 많이 벌었고요.

 

그래도 지금 그때로 돌아가라면 안 돌아갈 것 같아요. 지금의 일은 교대근무도 없고 제 삶의 패턴을 일에 욱여넣지 않아도 돼서, 급여 수준이 이전에 못미쳐도 더 만족스러워요. 일이 훨씬 적성에 잘 맞기도 하고요.

 


현주님의 커리어 여정 속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과 가장 잘했다고 느껴지는 일을 하나씩 꼽아본다면요?

 

후회되는 건 없지만, 첫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선배들에게 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거기서 계속 일할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두 다리를 걸치고 있었나, 싶어요. 제가 지금 그분들 입장이라면 되게 아니꼽게 볼 것 같거든요. 그런데 단 한 분도 제게 싫은 소리를 안 하셨어요.

 

제일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은, 매순간 제가 가진 모든 에너지의 총량을 다 썼다는 거예요. 지금은 예전처럼 하래도 못해요. 체력이 못따라주니까요.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늘 이런 말을 하죠. ‘이렇게 되려고 그렇게 했다!’

 


계속 통신사에 남아 엔지니어를 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래도 제 자리에서 최선은 다했겠지만, 좋은 성과를 내진 못했겠단 생각이 드네요. 저는 한 번씩 돌발행동을 하는 편이고, 큰 줄기를 잡아서 아이디어 내는 걸 좋아하거든요. 엔지니어라는 직무는 그런 적성을 살리기 어려운 일이라, 그 직무에서 내야 할 최대 성과를 내긴 어렵지 않았을까 싶어요.

 


또 다른 커리어 전환을 계획 중이신지 궁금해요.

 

강사라는 직업에 종사한지 10년이 되어가는 시점이라, 요새 ‘내가 이거 말고 잘하는 거, 좋아하는게 뭐지’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최근에는 기업 내부에서 진행하는 교육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반드시 어학이 아니더라도, 여러 사내 교육 시스템을 운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교육 운영이라는 게 각 직무에서 필요로 하는 교육을 적재적소에 지원하는 일이더라고요. 다양한 사람을 만나 각자의 일에 대해 얘기 듣는 걸 좋아하는 저의 성향이 잘 발현되지 않을까 싶어요. 
 





박지민 기자 jm.park@company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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